가끔은 억울하다. 가운만 입고 작은 골방에 누워 시술 순서를 기다릴 때의 쓸쓸함. 아침저녁으로 숙제하듯 질정을 넣을 때의 귀찮음. 피 뽑은 자리의 지혈 밴드를 뗄 때의 찌릿함. 정기적으로 챙겨 먹어야 할 약을 깜빡했을 때의 가슴 철렁함. 이 모든 과정을 오직 내 몸으로만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아를 치밀게 한다.
“솔직히 넌 지금까지 한 게 뭔데?”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전쟁이다.
EP 01. 빛보다 빠른 인정
작년 초, 우리는 크게 다퉜다. 남편은 시험관 시술 중에도 집안일을 하고, 무알콜 맥주를 찾고, 티 한 잔을 마시면서도 임신에 영향이 있는지 찾아보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물론 내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의심당했을 땐 정말 화가 났다. 같이 챙겨주면 될 것을, 꼭 내가 무책임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했으니까. 그래서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빠 넌 아이를 갖기 위해 뭘 하고 있는 건데?” “맞아. 그냥… 하기 싫어서 미뤘어.” 이기적이고 뻔뻔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땐 그랬다고 했다. 얄미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솔직함이 조금 고마웠다. 이렇게 빨리 인정해버리니, 나 역시 내 잘못을 조금 더 쉽게 인정하게 됐다. 맞아, 우린 완벽한 인간들이 아니니까.
EP 02. ‘남편들은 편하다’는 생각
난임 카페나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이야기가 있다. 시술날 정액을 채취하는 남편들이 얄밉다는 것. 아내는 온몸으로 시술을 감당하는데, 남편은 골방에서 한 번으로 역할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다. 그런데 남편에게 물어보니 생각이 달랐다.
“별 감흥 없어. 진짜로.” 오히려 현자 타임이 더 심하게 온다고 했다. 골방 같은 공간에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묘한 기분, 수치가 안 좋아서 다시 하라고 할까 봐 괜히 더 긴장된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남편을 내 기준으로만 재고 있었던 건 아닐까.
EP 03. 그는 1을 맡고 있었다
남편이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주사 잘 놓기. 두 번째, 와이프의 변덕 견디기. 마지막으로 가만히 버티기. 뭐…? 변덕…? 나를 공격하는 건가? 남편의 설명을 들어보니 꼭 나쁜 뜻만은 아니었다. “너는 어쩔 때는 아이를 갖는 것에 의욕적이다가도, 어쩔 때는 낙담하잖아. 나는 그걸 덜 하려고 하는 거지. 나라도 항상 잔잔하게 있으려고. 낙담해 있는 사람 옆에서 ‘힘내, 파이팅!’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시술이나 약은 내가 겪는 게 아니니까.” 난임 과정을 10으로 봤을 때 비중을 나눠보자고 했다. 남편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9대 1. 너가 9.” 그래서 물었다. “그럼 역할 바꿀 수 있어?” 남편은 바로 답했다. “아니. 나는 지금 내 1을 아주 잘하고 있거든.” 얄미웠다. 그런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1을 끝까지 맡아줄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비중은 1일지 몰라도, 남편이 말한 그 세 가지 역할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남편 역시 난임의 당사자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어쩔 때는 남보다 더한 남이 되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어도 괜찮다.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난임 치료를 하면서 아쉬움이나 답답함,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병원 내 의료진은 물론 가까운 지인이나 남편, 엄마, 직장동료, 친구가 내 마음 몰라줘서 감정이 북받쳤던 순간. 그 순간 차마 말하지 못했던 한 마디, 아래 버튼을 눌러 꼬미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꼬미가 잘 듣고 다음 회차 뉴스레터로 답장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