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리며) “다~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어. 막상 하면 하게 된다~”
친구: “요즘 도 닦으세요~?”
맞다. 난임 시술은 어찌 보면 도를 닦는 행위와 비슷하다. 매일매일 작은 실천을 통해 나 자신을 단련하며 목표로 향해 가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주사’가 있다.
시술 초반, 병원 주사실에서 남편과 함께 근심 가득한 얼굴로 주사법을 배우던 날이 기억난다. 스스로 주사를 놓던 첫날은 손이 덜덜 떨렸고, 혹시 실패할까 봐 동료에게 부탁했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제는 물 흐르듯 유려한 움직임으로 주사를 놓는다. 마치 무술에 통달한 도인처럼 말이다.
주사액 통에서 공기 방울을 최소화하여 주사액을 주사 본체에 옮기고 얇은 주삿바늘로 교체한다. 바늘 끝에서 주사액이 찔끔 나올 때까지 공기를 뺀다. 미리 배를 조물조물 눌러보면서 뭉친 곳은 풀어주고 말랑말랑한 곳을 공략해 소독솜을 문지른다. 그리고 바늘을 최대한 직각으로 놓고 배를 향해 밀어 넣는다.
어떤 날은 바늘 끝에서 우둑, 어떤 날은 쑤욱, 또 어떤 날은 으지익이 느껴진다.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엄지누름대(주사기 밀대가 들어가도록 누르는 곳)를 누른다. 잠시 쉬었던 숨을 주사액이 들어가는 속도에 맞춰서 서서히 내쉰다. 내쉰 숨에 몸을 이완시키면 더 주사액이 잘 들어가는 느낌이다. 액이 다 들어가면 바늘을 빠르게 빼고 소독솜으로 빠르게 누른다.
이 일련의 과정이 수월하게 끝나면 뿌듯한 성취감마저 느낀다.
몸의 아픔은 있지만, 이 과정에서 잡념이 사라지고 그 순간순간에 집중한다.
그러나 모든 주사가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다. 최근 처음 처방받은크녹산 주사는 그야말로 시험관 주사의 끝판왕이었다. 검색창에 ‘크녹산’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크녹산멍’이 뜰 정도다. 푸르스름하게 번지는 멍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멍으로 뒤덮인 내 배는 마치 전쟁터 같았다. ‘난 지금 난임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구나.’
시술 과정 중 처음으로 내가 진짜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눈으로 보이는 흔적이란 이렇게 강렬하다. 흉터 하나만 남아도 딱한 내 몸에 푸르뎅뎅한 멍이 무늬처럼 남으니 더 서글펐다.
그런데 뭐, 처량하다고 어쩌겠는가. 해야지 뭐.
주사를 맞는 시기가 되면 나의 몸과 마음에 더 자주 말을 건넨다.
"괜찮아?" “컨디션은 좀 어때?”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안부인사랄까.
다행히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로 쌓이는 주사기들을 보며 엉뚱하게 환경 걱정까지 하게 된다. ‘내 난임이 플라스틱 오염에 기여하고 있구나. 이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빨리 임신해야겠어!’ 하는 범지구적(!) 책임감도 생겼다. 주사 하나로 명상도 하고, 뿌듯함도 느끼고, 환경도 고민하고, 우울해하는 난리법석.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과정을 겪으며 오늘도 난임라이프를 이어간다.
그래도 가끔은 그 주사 말고 에잇, 술이나 진탕 먹고 주사(酒邪) 부리고 싶네.
난 진정한 성인군자, 도인은 되지 못할 것 같다.
💌 꼬미의 답장 | 남편의 질환으로 시작된 치료임에도, 그 과정에서 외면받는 듯한 순간들은 사연자님에게 더 깊은 외로움과 상처로 남았을 거라 생각해요. 치료보다 더 힘든 건, 마음이 혼자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니까요. 그 누구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전해주셨기에, 사연자님의 용기는 난임을 겪고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에 위로가 될 거예요. 말하기 어려운 진심을 용기 내어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며 두줄레터는 그 마음을 꼬옥 안아드리고 싶어요. 오늘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우리 함께 조금씩, 나아가요🫶
난임 치료를 하면서 아쉬움이나 답답함,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병원 내 의료진은 물론 가까운 지인이나 남편, 엄마, 직장동료, 친구가 내 마음 몰라줘서 감정이 북받쳤던 순간. 그 순간 차마 말하지 못했던 한 마디, 아래 버튼을 눌러 꼬미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꼬미가 잘 듣고 다음 회차 뉴스레터로 답장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