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시술 과정의 90%, 아니 조금 더 보태자면 97%는 아내의 몫이다.
주사를 맞고, 질정을 넣고, 채취와 이식을 위해 시술대에 눕는 것도, 피를 뽑는 것도 모두 아내, 즉 내가 감당해야 했다. 시술 초반에는 남편도 이 과정에 최대한 참여하려고 노력했고, 어쩌면 나보다 더 신경을 썼다. 하지만 난임 생활이 점점 일상이 되면서 남편의 참여도 줄어들었다.
어느 날 남편이 중요한 회의가 있다며 병원에 같이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을 때, 나는 폭발할 뻔했다. “나도 일하는데! 나는 뭐 한가해서 병원에 가는 줄 알아?” 남편도 무거운 마음으로 말했겠지만, 어찌나 서운하고 억울하던지.
이렇게만 가다가는 더 큰 다툼이 생길 것 같았다. 어차피 내 몫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따로 또 같이’라는 룰을 만들었다.
함께할 일과 내가 혼자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남편에게도 역할을 부여하기로 했다. 좋은 협업은 명확한 역할 분담에서 시작되니까.
✅남편에게 맡긴 첫 번째 역할: 병원 오픈런
병원 진료는 남편이 없어도 되지만, 나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진료를 위한 긴 대기 시간이 매번 나를 지치게 했다. 병원 문이 열기도 전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데, 이 일을 남편이 도맡았다.
남편은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내 이름을 적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출근 준비를 했다. 나는 그와 바통 터치하듯 병원으로 향했다. ‘따로’의 미학을 실천한 셈이다. 남편이 이 역할을 맡으면서 나는 진료 대기를 덜 걱정하게 되었고, 남편은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내면서 우리의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꼈다.
✅남편에게 맡긴 두 번째 역할: 주사 놓기
솔직히 혼자서도 주사를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바늘을 들고 배에 찌를 때마다 어찌나 서럽던지.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남편에게 주사를 맡겼다. 남편은 내 배에 주사를 놓으며 조금씩 이 과정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덕분에 주사를 놓는 법, 약의 이름, 이 약들이 왜 필요한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역할 분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남편이 주사를 놓아줄 때마다, 이 시술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둘의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남편이 주사를 맞는 건 아니지만, 바늘을 들고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그의 눈빛에서 ‘혼자가 아니다’라는 든든함을 느꼈다.
(솔직히, 그래서 일부러 더 아픈 척을 한 적도 있다.ㅋㅋ)
남편이 나만큼 이 과정을 체감하거나 매 순간 공감할 순 없다. 몸의 고통을 겪는 건 결국 나다. 하지만 그가 모든 걸 함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역할이나 기여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남편이 알아서 척척 다 해줬으면 좋겠지만, ‘따로 또 같이’ 역할 분담은 결국 ‘대화’에서 시작된다.
두 줄의 기다림 속 우리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