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계산이 단순했다. 성공 확률이 20~30%라면 세 번 정도는 해봐야지—담당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을 하고도 실패하자 선생님은 시험관을 고려하라고 권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턱 내려앉았다. ‘벌써? 아직 시험관을 할 준비가 안 됐는데.’ 인공수정을 한 번 더 하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시험관은 더 힘들고 단계가 많다는 걱정이 뒤섞였다. 무엇보다 인공수정이 안 되더라도 아직 시험관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나름의 위안이었는데, 갑자기 그 위안까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때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가 인공수정을 한 번 더 하고 싶다면 당연히 응원해. 다만 시험관을 너무 ‘마지막 단계’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임신을 수정과 착상으로 나눠 생각하면, 시험관은 이미 수정 단계를 거친 상태니까 확률적으로 더 유리할 수 있어. 우리가 직접 힘들게 할 부분을 기술이 도와주는 거라고 보면 오히려 희망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감정부터 튀어나왔다.
“당신이 겪을 게 아니니까 말은 쉽지!!!” 시술의 고통과 긴장은 온전히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남편의 설명이 너무 이성적이고 단정하게 느껴져 더 서운했다. 마치 나만 감정적이고, 나만 흔들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괜히 내가 떼쓰는 사람처럼 느껴져 더 위축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겁나는 건 너무 당연해. 그런데 네 성공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다면 지금은 시험관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어. 네가 원하는 곳에 더 빨리, 더 확실하게 닿을 수 있는 길이라면 한 걸음 옮기는 게 후회는 덜할 거야.”
곧바로 깨달았다. 그 말은 사실 남편이 나에게 해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 감정 속에 푹 잠겨 있어서 그의 말을 ‘잔소리’나 ‘차가운 조언’처럼만 들었던 것이다. 친구에게 조언하는 나를 떠올려보니, 그 말은 충분히 현실적이었고, 충분히 다정했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감정에 잠기면 작은 변화도 거대한 공포처럼 느껴지고, 선택은 자꾸 미루고 싶은 숙제가 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나를 잠시 남처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니 다음 단계를 향해 내딛는 발끝이 예전보다 덜 떨렸다.
물론 이 깨달음이 바로 실천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연습했다. 내 상황을 글로 써서 다시 읽어보고, 상담가라면 뭐라고 말할지 상상해봤다. 그래도 여전히 쉽지 않은 순간은 있다. ‘맞는 방향인 건 알면서도 마음이 좀처럼 따라가지 않을 때.’ 실패가 두렵고, 다음 단계가 무겁고, 더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자꾸 밀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감정이 앞설 때는 잠시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는 연습도 하면서. 그 작은 연습이 앞으로의 여정에서도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줄 것 같다.
p.s. 여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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